영국의 11월은 때로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기 딱 좋은 여러 조건들이 많습니다. 10월 마지막 주를 끝으로 써머타임이 끝나 더 일찍 해가 지기도 하고 잦은 비와 강한 바람이 불기도하고 푸른 하늘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월의 계절이 더 아쉬움으로 남는가 봅니다.
지난 주중 친구 목사가 보내준 시 한편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때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던 박노해 시인의 시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앞글자를 딴것이고 원래의 이름은 박기평입니다.
무엇이 남는가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부자들에게 돈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성직자에게 직위를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지식인에게 명성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빼 버리고 남은 그것이 바로 그다
- 박노해, '무엇이 남는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Title'로 자신을 보여주고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양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시인의 고백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명성과 직위와 돈과 권력을 빼 놓고 남겨진 것들이 자신의 참된 모습일 수 있다는 글귀에 자신을 추스르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